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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업에 발목 잡힌 가전 시장 1인자, LG전자

기사 입력시간 : | 최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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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업에 발목 잡힌 가전 시장 1인자, LG전자

 

2018년 기준 국내 재계서열 4위의 그룹사인 LG그룹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기업은 ‘LG전자’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과는 달리, 다른 많은 가전 분야에서는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백색가전 시장에서 LG전자는 글로벌 주요 가전 기업 중 영업이익과 이익률의 측면에서 경쟁기업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록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인해 작년 4분기에는 2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긴 했지만, 지난해의 매출은 61조 3,417억 원, 영업이익은 2조 7,033억 원을 거두며 연 단위 최대 실적을 낸 바 있다. 백색가전 시장의 선두주자인 LG전자에게 남은 숙제는 단 하나, 휴대폰 시장에서의 ‘부활’이다.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간 금성사

 

LG그룹의 창업주는 연암 구인회 회장이다. 1926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한 구인회 회장은 귀향 후 지수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했는데, 이것이 그의 사업가로서의 첫 출발이었다. 본격적으로 그가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31년 진주에서였다. 동생인 구철회 LIG그룹 초대 회장과 함께, 그리고 사업이 확대되면서 사돈 관계였던 허씨 집안과 동업으로 구인회포목상점을 시작한 구 회장은 이후 여러 사업을 거치면서 많은 토지를 매수하게 된다. 1943년에 이르러 구 회장은 만석군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토지를 소유한 자본가가 될 수 있었다.

 

가전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1인자, LG전자

 

대한민국 해방 이후 구인회 회장은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부산으로 터전을 옮기고 조선흥업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47년에는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게 되며, 1958년에는 라디오의 국산화를 결심하고 부산 연지동에 금성사라는 이름의 전자 회사를 세우고 초대 사장을 겸하게 된다. 창업 1년 뒤 금성사는 실제로 국내 최초의 진공관식 9구 라디오를 개발해 생산했으며, 1960년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선풍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최초로 국산 자동전화기의 개발에도 성공했다.

 

국내 최초의 진공관 라디오를 복각해 70주년 기념판으로 제작된 LG전자의 블루투스 스피커

 

1962년에 이르러서는 국산 라디오를 처음으로 미국 아이젠버그사에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1965년에는 최초의 국내 냉장고 생산에 착수하게 된다. 금성사가 본격적으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된 것은 1966년 내놓은 최초의 국산 19인치 흑백 TV인 ‘VD-191’을 통해서였다.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춘 금성사는 1968년 미국 뉴욕에 첫 해외 지사를 설립했으며, 창업 20년 만이자 해외 수출 16년 만인 1978년에는 국내 가전업계 최초로 수출 1억 달러의 금자탑을 달성하게 된다. 금성사는 국내 전자 기업들 중 가장 많은 ‘최초’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였다.

 

 



LG전자로 사명 변경, 백색가전 시장에 우뚝 서다

 

구인회 회장이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는 ‘주식회사 럭키’로 성장했으며, 금성사는 럭키그룹과 묶여 럭키금성그룹으로 주로 불렸다. 금성사의 성장으로 인해 럭키와 금성사는 1983년 럭키금성그룹으로 그룹명을 바꾸었으며, 1995년에 이르러서는 럭키의 L과 금성(Goldstar)의 G를 따온 LG그룹으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그룹명에 맞춰 금성사도 사명을 현재의 LG전자로 바꿔 지금에 이르게 된다.

 

LG전자 재도약의 시기를 주도한 고 구본무 회장 취임식

 

사세를 확장하던 LG전자에게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IMF 이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재벌들의 과잉 중복투자와 소모성 경쟁을 견제하기 위한 각 분야별 그룹 간의 빅딜을 제안하게 된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LG전자와 현대전자가 빅딜의 대상으로 떠올랐으며, 빅딜 평가기관이었던 ADL이 두 회사의 기업 평가에서 현대전자에 보다 높은 평가를 내리면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가고 만다. 이후 LG반도체는 몇 차례의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의 ‘SK하이닉스’에 이르게 된다.

 

국내 최초 3D 스마트폰, 옵티머스3D

 

반도체 산업을 반강제로 내주게 된 LG전자는 이후 가전 사업에 집중하면서, 이전보다도 더 큰 실적을 연이어 백색가전 시장에서 기록했다. 1999년에는 ‘디지털 경영’을 선포하고 LG전자와 LG정보통신을 합병하며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에는 휘센 에어컨을 출시해 에어컨 시장 세계 1위의 자리를 거머쥐었으며, 2002년 11월에는 세계 최초의 홈 네트워크 시스템 ‘LG홈넷’을 출범시켰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2017년까지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LG하면 떠오르는 ‘선행’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서슬이 퍼런 일제 강점기에 중경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심지가 곧은 인물이었다. LG그룹은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받아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위한 복지 사업에 힘을 쓰고 있으며, 독립운동 관련 시설을 개보수하고 국가유공자 및 해외 참전용사의 자택 개보수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8월 비무장지대 지회 폭발로 상해를 입은 군인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사례, 선행을 펼친 시민들을 찾아 상금을 전달하는 ‘LG 의인상’도 유명하다.

 

시각장애인 전용 ‘책 읽어주는 폰’을 개발해 기증하고 있는 LG전자

 

LG그룹은 그룹사들 중에서도 사회 공헌 사업에 관해서는 특히 유명한 곳이며, LG전자 또한 그룹사의 기조를 따라 다양한 공헌 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지난 2016년에는 LG전자가 복지 시설에 놓인 제품에 대해 무기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또한 2006년부터 LG전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휴대폰을 개발해,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전용 휴대폰을 개발해 매년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있다. LG전자의 ‘책 읽어주는 휴대폰’은 피처폰 시절을 지나 스마트폰 시대를 맞은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또 시각장애인들에게 배부되고 있다. 최근에는 구광모 회장이 주재한 간부회의에서 전국 초, 중, 고교에 대용량 공기청정기 1만 대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을 수립한 사실도 알려진 바 있다.

 

LG전자는 아프리카에서 의수족을 기부하는 등의 사회 공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LG전자와 LG그룹이라는 이름은 대중들에게 호의적으로 전달된다. 단순히 기술 개발과 판매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헌과 선행에 힘쓰는 모습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소구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의 사회 공헌 사업은 단순히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데, 내전과 테러로 팔다리를 잃은 환자들에게 의수족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저개발국 자립과 복지를 위한 사회 공헌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폰 시장에서의 뼈아픈 실패

 

앞서 이야기한 ‘최초의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처럼, LG전자는 휴대폰 시장에서도 누구보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1996년 LG전자가 출시한 PDA폰 ‘멀티X’는 세계 최초의 통화가 되는 풀터치폰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의 태블릿PC의 원형이 되는 ‘디지털 아이패드’라는 이름의 8.4인치 웹패드도 2001년 LG전자가 최초로 공개했으며, 최초의 지상파 DMB폰도 LG전자를 통해 출시됐다. 단순히 ‘최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피처폰 시절의 LG전자는 실적 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2005년 이들이 출시한 싸이언 초콜릿폰은 독보적인 디자인을 무기로 1,000만 대의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LG전자의 실책을 상징하는 제품, 뉴초콜릿폰

 

하지만 피처폰 시절과는 달리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LG전자는 휴대폰 시장에서 그 전까지의 시장 점유율을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만다. 컨설팅 업체인 맥캔지의 조언에 따라 스마트폰 대신 피처폰에 더욱 집중하는 전략을 취한 탓으로, 2010년경부터 휴대폰 시장에서 LG전자의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스마트폰 시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양한 실험적 제품을 많이 내놓던 LG전자가, 정작 휴대폰 시장의 가장 극심한 격변기에 보수적인 선택을 취하면서 실패를 겪고 만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전장사업에서도 실적이 나오고 있다

 

2009년 노키아,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시장 3위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LG전자는 2019년 현재 글로벌 점유율이 1%대로 떨어져 있는 상태다. 작년 4분기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매출 1조 7,082억 원에 영업손실은 무려 3,223억 원을 기록했다. 연간으로 살펴보자면 2017년 11조 원 규모의 매출이 작년 8조 원 아래로 곤두박질쳤으며, 영업손실은 7,400억 원에서 7,900억 원으로 더욱 악화됐다. 가전 사업에서 영업이익률 8.6%로 경쟁업체인 삼성전자 가전사업 부문이 기록한 4.8%의 약 2배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에 비하자면,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실적은 그야말로 회사 전체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상황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가장 큰 과제로 남은 스마트폰 사업 정상화

 

LG전자는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헬스케어 생활가전과 OLED TV 출하 확대에 힘입어, 4년 연속 영업이익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 인공지능 등 LG전자가 새로이 집중하고 있는 미래 성장동력 사업들도 올해를 기점으로 실적을 거둬들이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LG전자가 집중하고 있는 전장사업의 경우에는 작년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증가한 매출을 기록하며, 올해에는 첫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한 작년, LG전자의 스마트폰 실적은 더 악화됐다

 

다른 사업들이 호재를 맞고 있는 와중에, 안타깝게도 스마트폰 사업은 여전히 뚜렷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LG전자의 위기요소로 이야기되고 있다. 반도체, 전자부품 가격이 전년대비 평균 30% 가량 하락하며 원재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든 점을 들어, 올해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실적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생산라인의 효율화로 실적 개선을 이야기했던 작년에 오히려 적자폭이 더 커진 점,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자체가 둔화된 점들을 들어 앞으로도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5G의 바람을 타고 도약을 꿈꾸는 LG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V50 ThinQ

 

일각에서는 LG전자의 실적에 독이 되는 스마트폰 사업의 ‘정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5세대 이동통신, 사물인터넷의 시대에서 스마트폰이 중추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감안해,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적자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분야에서는 모두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LG전자에게 남겨진 숙제는 스마트폰 사업이다.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과거의 영광을 얼마나 되찾아 올 수 있을지, 백색가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얼마나 스마트폰 시장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가 LG전자 미래 산업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 : 최덕수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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