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가 뜨거운 감자를 두고 설전 중이다. 다름 아닌 모바일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때문이다. 작년 2월, 게임 '삼국용팝'의 특정 캐릭터를 얻기 위해 각각 1200여만 원, 960여만 원을 쓴 게이머들이 냈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가 1심에서 기각됐다. 해당 게임은 유비, 조조 등 원하는 장수 캐릭터를 얻기 위해 확률형 아이템을 반복 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많은 돈을 쓰고도 원하는 캐릭터를 얻지 못한 게이머들이 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아이템 구매에 확률을 넣어 반복 결제 유도

확률형 아이템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돈을 게임에 쏟아붓게 만드는 것일까. 확률형 아이템이란 복권처럼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뽑기' 형식의 아이템을 말한다. 일본어에서 따온 ‘가챠’로 불리는 경우도 있는데, 가챠는 예전에 문방구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작은 캡슐 안에 장난감이 들어 있는 무작위 뽑기 기계의 손잡이를 돌릴 때 나는 ‘찰칵찰칵’ 소리의 일본식 표현 ‘가챠가챠(ガチャガチャ)’에서 유래했다. 이하 우리말 ‘뽑기’로 통칭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반복적 뽑기를 유도하기 때문에 대다수 게임사들의 수익모델이 되고 있다.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게임 이용자가 캡슐 등의 형태로 구입해 개봉 후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캡슐형 아이템'과, 무기 혹은 방어구 등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강화 아이템'이 그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2015 3월,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때 획득 가능한 아이템 종류와 구성 비율, 획득 확률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자율 규제안 마련했지만 꼼수 투성

법안이 발의된 배경은 확률형 아이템이 과소비를 유도하고 도박처럼 사행성을 조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게임 산업을 갉아먹는다는 이유였다. 특히 미성년자에게까지 확률형 아이템이 판매되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지나친 간섭이라며 즉각 반발했고,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를 통해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제안은 실효성 지적을 피하지 못 했다. 녹색소비자 연대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자율 규제를 따르고 있는 158개 게임 중 단 27개 게임 만이 게임 내에 확률을 공개했다. 또 153개 게임은 아이템 별 확률이 아닌 구간 별 확률을 공개하는데 그쳤다. 이 방식은 이용자가 원하는 아이템과 원하지 않는 아이템을 묶어서 확률을 공개해도 무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꼼수가 가능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자율 규제가 미흡하단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시초

게이머들에게는 공공의 적 취급을, 개발사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모셔지는 확률형 아이템은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일까? 온라인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한 첫 사례는 ‘메이플스토리’다. 일본에서 서비스 중이던 메이플스토리는 2004년 6월 ‘가챠포티켓’이란 이름의 아이템을 1장당 100엔에 판매한다. 티켓을 각 지역에 위치한 뽑기 자판기에 넣으면 무작위로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이다.

▲가챠포티켓(왼쪽)과 부화기 (출처 : THIS IS　GAME)

가챠포티켓의 판매량이 예상을 웃돌자, 넥슨은 다음 해인 2005년 7월 한국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한다. 국내에 처음 공개된 확률형 아이템은 ‘부화기’로 게임 내에서 획득이 가능한 피그미에그를 부화시켜 무작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당초 한시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던 부화기는 연장 판매와 추가 판매를 계속하며 판매 기간을 늘렸고, 2008년에는 아예 프리미엄 부화기로 업그레이드하며 상시 판매가 이뤄졌다. 이런 메이플스토리의 부화기 판매 성공은 다른 개발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확률형 아이템 판매에 뛰어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모바일 게임으로 옮겨간 확률형 아이템

스마트폰 보급 초창기, 국내 모바일게임은 ‘애니팡’ 등의 캐주얼 게임이 주를 이뤘다. 이들의 성공을 목격한 개발사들은 앞다퉈 캐주얼 게임을 선보이지만 이미 선점된 시장과 한정된 장르 안에서 후발주자가 치고 올라가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개발사들이 눈을 돌린 곳이 좀 더 복잡한 게임, 다시 말해 ‘미드코어’ 게임이었다. 하지만 미드코어 게임에는 치명적 장벽이 존재했다. 캐주얼 게임에 비해 개발비는 비싼데도 마땅한 부분유료화 방식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초창기 대부분의 국내 모바일 미드코어 게임들은 고급 장비 판매, 능력치 추가 등 피처폰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익모델만 선보이고 있었다.

그 즈음 일본 모바일 게임에서는 다양한 캐릭터의 조합이 등장하는 카드 배틀 게임이 대세였다. 그리고 여기에 ‘가챠(뽑기)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일본 게이머들은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뽑기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일본의 ‘가챠’가 2012년 8월 모바일게임 ‘바하무트’를 통해 국내에 상륙하면서 대박은 아니지만 짭짤한 매출을 거뒀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 달 뒤 모바일게임 ‘확산성밀리언아서’가 출시 첫날부터 iOS 매출 1위에 오르고 월 매출이 60억 원에 육박한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확률형 아이템’은 수익모델을 고민하던 한국 게임사들의 구원투수로 등극한다.

매출 극대화 위해 ‘확률형 아이템’에 집중

결국 온라인게임의 성공 확률은 낮고, 캐주얼 게임의 선점 효과 벽은 넘기 힘들고, 미드코어 게임에서는 다른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던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수익 모델로 자리매김한다.

그 결과 한국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한 모바일 게임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2013년 1월 1일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 20위 내 게임 중 확률형 아이템을 주력 수익 모델로 내세운 모바일 게임은 4개에 불과했지만, 12월 31일에는 8개로 2배 증가했고, 현재는 확률형 아이템이 없는 국산 모바일 게임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게이머의 심리와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절묘히 이용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하면 운이 좋은 이용자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플레이를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다. 미드코어 RPG 게이머들의 성장 욕구와 적은 투자로 큰 보상을 바라는 사행심리가 절묘하게 섞이면서 확률형 아이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아낌없이 돈을 쓰게 되는 이유는 모바일 게임의 특성에서도 기인한다. 모바일 게임은 사실상 혼자 하는 게임으로 다른 게이머와 실시간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덕분에 게이머 사이의 균형을 단번에 뒤집는 기능성 아이템의 판매나 구매가 부담이 없다. 온라인게임은 게임 안에서 이용자들끼리 실시간 경쟁이 이뤄지기 때문에 평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 판매가 큰 비난을 받는다. 스킨 류의 치장형 아이템 판매가 주를 이루는 ‘리그오브레전드’가 착한 유료화로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은 다르다. 다른 이용자와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을 사고파는데 심리적 제한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결제 방식도 온라인게임보다 훨씬 간편하다. 모바일 게임의 결제는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다. 충동에서 구매까지 직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온라인게임(50만 원)이나 웹보드게임(30만 원)처럼 한 달 구매한계도 적용되지 않는다.

분노한 유저들, 규제를 요구하다

지금 중소 게임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온라인게임과 달리 모바일게임 개발사는 퍼블리셔, 앱스토어 등과 수익을 나눈 후 매출의 20% 정도만 손에 쥘 수 있다. 그러니 게임사는 자꾸만 ‘이용자 착취’ 유혹에 빠지고 결국 게임 내용보다 확률형 아이템이 주가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했고, 결국 아이템을 구매하는 이용자들이 법적인 규제를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무리 돈을 투입해도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고, 도대체 아이템 획득 확률이 얼마나 되는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자 게임 이용자들이 분노한 것이다.

게임 업계 스스로 흐름 바꿀 실마리 찾아내야

결국 이용자와 게임사가 계속 상생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확률형 아이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 분위기에서 벗어나 게임 콘텐츠 자체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의 수명이 이전보다 더 빨리 짧아지고 있는 요즘, 확률형 아이템으로 단기간에 수익을 내고 새로운 게임으로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용자를 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라며 "오랫동안 게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용자와 소통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윈-윈(win-win) 수익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임유빈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