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ICT 시장에 관해서는 항상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 위용을 떨쳤으며, 전 세계 글로벌 공룡들이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를 부지런히 벤치마킹했다. 산업 지형을 바꾼 스마트폰 격변기를 맞고서도 한국의 제조사에서 제조한 스마트폰이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에 시장 상황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서비스는 ‘갈라파고스’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온라인과 모바일 플랫폼의 게임 시장은 미국, 일본, 중국에 뒤처져 있다. 스마트폰 시장 또한 향후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전까지의 ICT 시장에서의 대한민국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있어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였다. 시장의 주를 이뤘던 콘솔 게임 시장에서는 제대로 날개를 펴지 못했고, PC 기반의 클라이언트 게임도 우리나라 게임을 해외의 게이머들이 즐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을 통해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창구가 열리면서, 우리나라의 게임 콘텐츠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전 세계 게임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던 200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연일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가리켜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라고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IMF로 위기를 겪은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정책의 핵심으로 삼았던 산업이 IT 산업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인터넷 산업은 국가의 집중 투자를 바탕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1998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310만 명에 지나지 않았던 인터넷 사용자 수는 2000년대 말에는 2,000만 명을 바라보는 정도까지 성장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률은 전체의 85.1%에 달하며, 이용자 수는 4천만 명을 훌쩍 넘어선 4,194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 체계는 세계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발간한 ‘글로벌 온라인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통계 전문 리서치 기업 스타티스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갖고 있는 국가로 대한민국을 꼽고 있다.

이와 같은 가파른 성장 속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서비스들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토종 포털 사이트들이 인터넷 인프라의 성장과 함께 성장했고, 우리나라 인터넷 인구들은 그 서비스에 익숙해졌다. 포털 사이트뿐 아니라 여타 인터넷 서비스들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서비스들 대신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서비스들이 주류를 이뤘다. 스마트폰 혁명 이후 한 차례 위기를 겪은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빠르게 바뀐 생태계에 적응해, 우리나라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전보다도 더 높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우리나라 IT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이처럼 확고했다.

해외 서비스들이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확고한 국산 서비스, 그리고 제조사들의 위치가 점차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게임 시장에서부터 그 조짐은 나타났다. 모바일 게임 시대를 맞아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대형 게임들이, 그리고 아래에서는 양산형 중국 RPG들이 매출 순위를 점령하고 있다. 국내 게임산업에서의 중국 기업들의 자본력,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중국이라는 국가의 영향력을 빼고는 논할 수가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훨씬 더 견고한 시장으로 여겨졌던 포털 사이트, 검색 서비스의 점유율에도 변동이 나타나고 있다.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기관은 코리안클릭과 더서치모니터는 2015년 77%의 네이버 검색 점유율이 작년에는 48%를 기록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음을 밝혔다. 반면 네이버의 줄어든 점유율을 차지한 것은 국내의 다른 포털 서비스가 아닌 해외 서비스로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의 하락 대비 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구글로, 2014년 검색 점유율 2%에서 2015년 6%, 그리고 작년에는 37%로 상승했다. 구글뿐 아니라 유튜브도 큰 폭의 성장을 이뤘는데, 작년 9월 PC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유튜브가 1,615만 쿼리로 1위, 네이버가 1,105만 쿼리로 2위, 그리고 구글이 755만 쿼리로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줄곧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애플에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작년 4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7,750만 대로 전년 동기보다 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음을 밝혔다. 반면 애플은 동기간 7,830만 대의 아이폰을 판매해 점유율 17.8%로 삼성전자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의 점유율 상승은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현재 아이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점유율 하락의 문제는 다양하지만 결국

구글 점유율 상승의 주된 원인은 스마트폰의 보급 덕으로 꼽히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제공하고 있기에, 기본 임베디드 앱으로 제공되며 디폴트 검색 엔진으로 설정돼 있는 구글의 검색 점유율이 스마트폰 이용량 증가와 함께 동반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의견이다. 아울러 상기 수치의 기준점이 되는 PC 플랫폼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57.27%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는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덕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구글을 비롯한 해외 서비스들의 플랫폼 파워로만 이 현상을 분석할 수 있을까. 구글의 점유율 상승이 아니라,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포털 사이트의 검색 점유율 하락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다른 시각에서의 분석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자사 서비스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도록 결과를 제공하는 국내 포털 검색 서비스의 폐쇄적 정책에 대한 비판, 또한 검색어를 통한 트래픽 유입을 노린 파워블로거들의 질 낮은 콘텐츠의 양산을 문제점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의성이 아니라 정보의 정확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구글의 검색 품질로 인한 코어 유저의 이동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두 가지 원인의 복합적 결과로 결론지을 수 있다. 해외 서비스들이 시기에 맞춰서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유입 채널의 다각화를 모색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점,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국내 지향 서비스들의 상대적 품질 하락과 이용자의 이탈의 복합적인 결과로 말이다. 여전히 쇼핑과 같은 명확한 목적을 가진 이용자들의 서비스 이용률은 국내 포털 사이트가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 검색, 소셜 미디어, 동영상 미디어 연계 서비스 등의 메리트로 인해 글로벌 서비스의 이용 빈도는 앞으로도 계속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경쟁력으로 귀결된다

국내 서비스들의, 국내에서의 견고한 점유율이 하락 추세를 그리고 있는 것은 시장의 변화를 표상한다. 브라우저, 모바일 OS 등 진입 채널의 다각화를 이룬 구글의 서비스들은 국내 포털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의 이용률 증가는 곧 유튜브 트래픽의 상승을 의미하고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률 증가는 페이스북과 동사가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글로벌 서비스들의 이용률 증가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한때 전 세계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던 국내의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과 같은 서비스들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한민국 모바일 게임 매출의 역사를 다시 쓴 리니지2레볼루션과 같은 게임이 나온 상황에서, 게임 업계의 큰손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규모 게임사들은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두에 선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업계 간의 간극,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빈틈을 해외 게임들이 차지해 나가고 있다. 현재 구글 플레이의 매출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50위권 내의 게임들 중 해외 게임의 비율은 18개 내외로, 비율로도 30%를 훌쩍 넘기고 있다. 확률성 아이템을 주요 BM으로 설정한 양산형 게임들의 홍수 속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국내 게임사들과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그 틈새를 해외 게임들이 차곡차곡 매워가고 있다.

허리가 끊어져 머리만 남은 서비스들, 부족한 플랫폼 파워, 폐쇄적 정책과 이용자 이탈, 스마트폰 폭발과 같은 치명적 사고와 그에 대한 미흡한 대처 등의 현상들은 결국 해외 기업들의 점유율 상승이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결국 한국의 제품들이 국내에서조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갈라파고스의 극복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 수복을 위해서 결국 요구되는 것은 기본적인 ‘경쟁력’의 상승이 될 것이다. 해외 기업을 배척하고 국내 제품을 애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용자들이 국내 제품을 찾아갈 수 있도록 경쟁력의 회복을 통해 점유율의 상승, 국내 산업의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최덕수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