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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보국에서 인공지능 TV까지, 우리나라 텔레비전 변천사

기사 입력시간 : | 김예슬 기자

가장 객관적이고 투명한 it 매체 앱스토리

 

자동차도 전기로 굴러가는 시대지만, 역시 ‘전자제품’ 하면 ‘텔레비전’이다. 전기로 대한제국의 가로등을 밝힌 그날의 충격 이후 전기가 사람들에게 선사한 본격적 쇼크 이벤트는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흑백텔레비전 하나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이윽고 ‘가족의 일부’가 되었으며, 리모컨이 가정 권력의 핵심이 된 시대에 이르기까지 텔레비전은 여전한 ‘부의 상징’이자, 가장 강력한 전자제품으로 거실에 군림하고 있다. 알고 보면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텔레비전, 그 변천사를 소개해본다.

 

 

더 선명한 화질 그 이상을 향해

OLED(올레드) 텔레비전은 백라이트유닛 없이 패널의 OLED 소자가 픽셀 하나하나의 빛을 통제한다. 명암은 더욱 분명하게 처리하는 기술과 노이즈를 제거하는 인공지능 센서까지 적용되었다. 시판 최고가 제품이 194Cm 벽걸이형으로 17,000,000원에 이른다. 패널이 스스로 빛을 내는 데다가 이런저런 기술까지 더해지니, 자연 그대로 보는 선명한 화질을 제공한다. LG전자가 이런 방식의 텔레비전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컬러볼륨 100%’를 내걸고 ‘QLED’ 텔레비전을 팔고 있다.

 

QLED 텔레비전은 단일 광원 백라이트의 LCD 패널에 퀀텀닷 디스플레이 기술이 접목된 텔레비전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주변 환경에 따라 가장 최상의 화질을 통제하여 제공한다. 시판 최고가 제품이 189Cm 벽걸이형으로 9,160,000원에 이른다. ‘이미지 리텐션’과 ‘번 인’ 등과 같이 평범한 아빠들은 모르는 안 좋은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100% TV’를 기치로 걸고 열심히 밀고 있다.

 

LG전자의 ‘올레드(OLED)’ 텔레비전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완벽한 화질’이라고 한다.

 

사실 지금 텔레비전은 ‘선명함’, ‘자연 그대로’ 등의 목표만으로 세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더 커도’ 가능해야 하고, ‘어디서 봐도’ 똑같아야 하고, ‘언제까지나’ 그 선명함이 유지되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시청자의 기호와 욕구를 인공지능으로 충족시켜야 하며, ‘영상 시청’의 목적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나 조형물, 심미안적 관점까지 만족시켜야 한다. 지금 텔레비전은 ‘화질’ 그 이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화질이 문제가 아니었던 텔레비전

1966년 7월 9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나라 제조사 상표를 달고, 텔레비전을 처음 생산했다. 진공관 12개와 발광다이오드 5개로 만들어진 흑백텔레비전으로, 1초에 30번씩 화면이 바뀌는 NTCS(Nation Television Systems Committee) 기술이 적용되었고 손으로 돌리면서 채널을 조정할 수 있었다. 너비 64Cm, 길이 31Cm, 높이 64Cm, 무게는 22Kg이었다. 시판 가격은 6만 원을 조금 넘었는데, 당시 국회의원 월급이 14만 원 정도였고, 도시근로자 한 가구당 월급이 1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성 흑백 텔레비전 ‘VD191’

 

국회의원들이 전부 월급의 절반으로 텔레비전 사려고 했거나, 도시근로자들이 죄다 6개월치 월급을 한 번에 쓰려 했는지는 몰라도, 당시 대한방송문화협회에서 구입 신청을 받았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추첨으로 판매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텔레비전은 ‘진공관식 19인치 1호’ 제품이란 뜻을 담아 ‘VD-191’이란 모델명이 붙여졌다.

 

대한방송문화협회 건물 밖에서 텔레비전 수상기 구매 신청을 위해 기다리는 인파

 

그 당시엔 화질이 문제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20세기 초반 이미 서구권 국가들과 ‘탈아입구’를 외치고 있던 일본은 전자식 텔레비전 기술을 발전시켜 흑백 방송을 송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53년 컬러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상용화되었다. 그리고 그 회사가 1954년 7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종로 보신각 앞에 20인치짜리 텔레비전을 갖다 놓았다. 당시에는 텔레비전 방송조차 없어서 그 텔레비전은 폐쇄 회로 화면을 띄워야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 가히 ‘장안의 화제’였다.

 

금성사 부산 연지동 공장,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도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되었으나, 아직 텔레비전도 만들지 못하던 나라에서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당시 정부는 갑자기 수입 텔레비전에 관세 폭탄을 던져서 대당 가격을 37만 원 수준으로 만들었다. 알게 모르게 들여오는 미군 PX 출신의 텔레비전들이 국내 수요를 감당하며 당시 1958년 보급대수는 약 7천 대 정도였다.

 

‘포터블’도 그렇지만 ‘조국근대화와 번영의 상징’이 중요했던 시절

 

하지만 국내 정세의 급변으로 1961년 한국방송공사(KBS), 1964년 동양방송(TBC)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되고, 텔레비전 방송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텔레비전 방송 확대를 꾀하기 위해 방송국도 만들고 수상기도 들여와 뿌리다가 텔레비전 생산의 국산화를 추진하기 시작한다. 그 거룩한 행보에 맞춰 금성사(지금의 LG전자)가 ‘산업보국’의 중임을 띄고 일본 히타치社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텔레비전 생산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부품 국산화율 50% 이상 사용 등의 조건으로 생산을 허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은 화질이 문제가 아니라 보국의 문제였다.

 

 

시간문제였던 흑백의 시대

한 번 본 사람은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텔레비전이다. 한일전, 레슬링 경기 등 주요 스포츠 이벤트 때마다 텔레비전 한 대에 동네 꼬마 어른 수 십 명이 몰려들었다. 가히 전자제품 중독의 ‘원조’라 할 수 있던 텔레비전의 인기로 산업이 확장일로에 접어들었다.

 

동남전기가 KIST와 산학협력으로 만든 리모컨 텔레비전 (출처 : 헤럴드경제)

 

금성사는 우리나라 최초 텔레비전 이후 60년대에 8종, 70년대에는 100여 종이 넘는 텔레비전을 출시하며 위세를 떨쳤다. 금성사 다음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을 생산한 동남전기는 1974년 우리나라 최초로 리모컨 텔레비전을 출시했다. 옛날에 종로 보신각에 텔레비전을 갖다 놓았던 회사와 합작한 한국마벨도 텔레비전을 본격적으로 생산했다. 삼성전자는 일본 산요社와 합작하여 1970년 처음 텔레비전을 생산했으며, 대한전선은 일본 도시바社와의 기술제휴로 1973년 텔레비전을 만들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고로 올림픽은 텔레비전으로 봐야 제맛이다

 

업계가 확장되면서 기술도 순식간에 발전했다. 70년대부터 진공관 방식을 벗어난 트랜지스터 방식의 텔레비전 수상기가 개발되었다. 트랜지스터 방식으로 집적회로(IC) 기술이 텔레비전에 적용되어 획기적인 제품 개발을 촉진시켰다. 기존 19인치 크기에서도 탈피하여 1972년부터는 12, 14, 20인치 등 다양한 크기의 텔레비전이 세상에 등장했고 1979년에는 9인치 제품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이 와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한다. 오일쇼크 등으로 격동의 시기였던 1974년의 일이다. 아남산업이 일본 마쓰시타社와 합작하여 한국내쇼날을 설립했고, 1974년 1월 ‘CT-201’을 생산한 것이다. 14인치가 32만 원, 20인치가 42만 원 수준이었다. 

 

1976년 개발되어 수출 먼저 했던 삼성전자의 컬러텔레비전 (‘국내 최초’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출처 :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이후 우리나라 텔레비전 업계는 컬러 수신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방송사들도 컬러 방송 준비를 시작했다. 1975년 한국전자박람회부터 컬러텔레비전은 핵심 화두가 되었고, 우리나라 컬러텔레비전은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되며 1977년 12만 대, 1978년 50만 대가량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컬러텔레비전 시판 및 방송은, 계층 간 위화감을 걱정해주신 분들 덕분에 보류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 정세의 격변기를 거쳐 1980년 8월부터 컬러텔레비전의 국내 시판이 허용된다. 이듬해 1월 1일, 역사적인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송출되었다. 1966년 우리나라 땅에서 처음 텔레비전을 생산한 지 약 15년 만의 일이었다.

 

금성사가 대대적으로 광고했던 트랜지스터(IC) 방식 텔레비전

 

  

화질이 문제였던 컬러 브라운관 시대

우리나라 최초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텔레비전은 브라운관 화면으로 만들어졌다. 브라운관(CRT) 기술은 1897년 개발된 이후 인류의 디스플레이로 군림하고 있었다. 전면의 특수 진공관(음극선관)에 내장된 형광물질이 후방의 전자총 기판에서 발생한 전자신호를 받아 다양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원리다. 생산단가가 저렴하여 텔레비전 산업이 급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7~80년 대에는 볼록한 화면이 주를 이루었으나 90년대에는 평면과 완전 평면 등으로 발전한다. 

 

뭔가 실현했다는 텔레비전 광고

 

브라운관 기술을 토대로 우리나라 텔레비전 산업은 급성장하고 경쟁은 순식간에 치열해졌다. 삼성전자는 1970년에야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으나 1975년 ‘예열없이’ 화면이 켜지는 ‘이코노TV’를 개발, 시판하여 주도권을 잡고 다른 경쟁자를 역사 속으로 날려버렸다. 1980년 동남전기가 부도 처리되었고, 1983년 대한전선의 전자사업부문 매각, 그 사업부문을 사들인 대우전자의 몰락, 그 몰락을 만든 IMF 외환위기 동안 같이 몰락한 아남전자의 철수 등을 통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이르는 동안 국내 텔레비전 업계가 지금 이 모양으로 재편되었다.

 

‘고장 나지 않는 것’도 자랑이었던 대한전선 ‘디제로’ 텔레비전


‘잘 켜지는 것’조차 자랑거리였던 삼성 ‘이코노TV’

 

1984년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어 음성다중 컬러텔레비전이 생산되었고, 1986년부터는 비디오 플레이어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텔레비전이 시판되기도 했다. 8~90년대의 브라운관 텔레비전 시대는 국내 보급률 100%를 만들었고, 대한민국 수출 탑을 매년 갱신시켰다. ‘산업보국’으로 시작한 국산 텔레비전들은 90년대 후반부터 외산 제품들을 거실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면 브라운관 기술을 바탕으로 고화질 30인치 수준의 와이드 스크린 텔레비전이 등장했다. 

 

브라운관 시대만 해도 아무도 아남전자를 쫓아갈 수 없었다 

 

‘고화질’이 대두되면서 브라운관은 본격적인 위기를 맞았다. 볼록한 건 당연히 그렇고, 아무리 평면으로 만들어도 화면 가장자리 부분의 화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좌우 끝에서 보거나 바짝 붙어서 옆으로 보면 상당한 노이즈가 발생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화면 크기를 34인치 이상으로 키울 경우 품질 자체가 위협을 받는 한계에 봉착했다. 물론 화면 크기가 클수록 ‘뒤태’도 같이 빵빵해진다는 가장 위협적인 문제가 있었다.

 

‘숨겨진 1인치를 찾았다’는 게 자랑거리였던 와이드 텔레비전 (출처 :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더 선명한 화질로 가는 길이 문제였던 PDP 텔레비전


(출처 : 두산백과)

 

텔레비전은 시대를 변화시켰고, LCD 디스플레이 기술은 텔레비전을 혁신시켜 텔레비전 시대를 변화시켰다.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크기의 한계에 봉착할 무렵, DLP 방식의 프로젝션 텔레비전이 대형화 수요를 충족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체 크기 자체도 무시무시하게 커졌고, 화면 램프의 수명이 소름 끼치게 짧았다. 덕분에 학교 등 공공기관의 대형 시각장비로 빠르게 보급되었으나, 이내 곧 신속하게 퇴장한다.

 

(출처 : 두산백과)

 

브라운관을 극복하기 위한 (당시) ‘차세대’ 기술로 LCD와 PDP가 급속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둘 다 전면 패널 자체로 화면을 구현했기 때문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빵빵한 뒤태를 소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단, 기술 초반 LCD의 반응 속도와 가격경쟁력이 주춤하는 사이, PDP 텔레비전이 대형화, 고화질을 추앙하는 국내 텔레비전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1993년 오리온전자가 국내 최초로 PDP 텔레비전을 출시했고 이후 40인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디스플레이의 가스 튜브가 플라스마 방전을 일으켜 화면을 구현하는 PDP 방식은 색상 표현능력, 응답속도, 시야각 등에서 LCD 보다 ‘더 선명한’ 화질을 구현하는 기술적 측면으로는 우위에 있었다. 

 

(출처 : 두산백과)


(출처 : 두산백과)

 

하지만 밝을수록 장비가 뜨거워지고, 그 뜨거운 열을 식히는 냉각팬들이 울려대는 소음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전력 소비량, 이전 화면의 잔상을 충실히 남겨주는 플라스마 특유의 현상 덕분에 시대를 주름잡진 못 했다. 고화질에 대한 욕구가 ‘HD’ 수준을 넘어 ‘더 HD’ 수준을 요구하면서 PDP 텔레비전의 경쟁력은 점차 쇠락했다. 2005년부터 LCD 기술의 개선과 함께 대형 텔레비전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하더니 결국 2010년대부터는 국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출처 : 두산백과)

 

텔레비전은 여전히 더 선명한 화질이 문제였다. 더 저렴한 가격에, 어떤 크기든, 어디서 보든, 얼마나 보든, 누구든 쉽게 즐길 수 있는 더 선명한 화질의 텔레비전이 필요했다. 그런 텔레비전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결국 국내 텔레비전은 LCD 기술로 귀결되기 시작한다. 

 

이래저래 다양했던 텔레비전 모양도 대충 이런 식으로 귀결되었다

 

  

더 선명한 화질을 완성한 LCD 텔레비전 시대, LED를 만나 인공지능으로 한 발 더

LCD는 ‘Liquid Crystal Display’의 약자로, 기존 진공관이나 플라스마와는 다른 액정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초기 LCD 텔레비전의 액정 디스플레이는 백라이트유닛이 결정적이었다. 액정 분자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었고, 백라이트유닛에서 빛을 쏘면 적, 녹, 청색의 컬러필터를 통해 전면 화면이 구현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의 기술력이 곧 품질이었고, 화질이었으며, 가격이었다. 

CCFL(Cold Cathode Flourscent Lamp)이나 EEFL(External Electrode Flourscent Lamp) 등 쳐다보기도 싫게 복잡해 보이는 여러 방식의 백라이트유닛이 LCD 텔레비전의 기술을 좌우했다. 하지만 2009년 LED 방식의 백라이트유닛이 개발되면서 2010년 이후부터 대부분 LCD 텔레비전의 백라이트유닛은 LED로 대체되었다. LCD 액정 패널은 단가가 내려갔고 LED 백라이트유닛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심지어 이전까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던 액정조차 스스로 빛을 내는 백색 유기 LED의 등장으로 백라이트유닛 없이 컬러필터만으로 화면을 구현하게 되었다. OLED 기술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패널은 더 얇아졌고 이전에 상상할 수 없던 다양한 제품과 대형 텔레비전을 상용화시킬 수 있었다.

 

보이는 것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텔레비전 시대

 

결국 2010년 이후 OLED 기술을 바탕으로 ‘울트라’ HD 고화질 텔레비전이 급속히 시판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화질 경쟁은 ‘어디 한번 누가 어디까지 만드나 보자’와 같은 심산으로 4K (해상도 3840x2160)를 넘어 8K (해상도 7680x4320)까지 개발되었고, 곡면 기술 등으로 모양은 더 다양해졌으며, 상하좌우 베젤을 극도로 축소시켰다. 더 커도, 더 얇아도 화질은 더 선명해졌다. 

 

지금 국내 텔레비전은 QLED와 OLED의 대결, 무기물과 유기물의 대결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붙잡고 만드는 사람 아니고서는 화질의 차이를 대번에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인공지능 센서가 등장했다. 

 

어디까지 얇아질 것인가

 

인공지능 센서는 주변 환경에 따라 화질을 더욱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어두운 건 더 어둡게 만들어 ‘진짜’ 검은색을 구현한다고 한다. 자연과 인공조형물의 느낌은 특성에 맞게 극대화하고, 인물과 배경은 살짝 다르게, 작고 세밀한 부분은 더욱 선명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심지어 시청자의 연령과 시각 인지 수준에 따라 화질이 조정된다. 

 

50여 년 전, 유리에다가 전자총을 쏘다가 유리를 없애고 스스로 빛을 내는 소자들을 집어넣더니 이제는 화질 자체를 인공지능이 조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땅에서 텔레비전 한 번 만들어 보자 했던 열망은 우리나라 땅에서 세계 최고의 텔레비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되었다. 더 선명한 화질 그 이상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는 인공지능 텔레비전 시대를 기대해보자.

 

 

텔레비전

사물의 광학적인 상을 전파에 실어 보내어 수신 장치에 재현하는 전기 통신 방식 또는 그 영상을 받는 수상기

'텔레비전(television)'과 '테레비, 텔레비젼' 중 올바른 표현은?

이 단어의 발음은 [tel?vi??n]으로 이에 따라 표기하면, ‘텔러비전’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관용으로 굳어진 것을 인정해 ‘텔레비전’으로 씀을 옳은 표기로 한다. 특히 언중들은 ‘-전’을 ‘-젼’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발음 기호 [?]를 보아도 ‘ㅓ’가 옳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생활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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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예슬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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