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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경계 위 VR 콘텐츠 ‘제재’, 이대로 괜찮을까?

기사 입력시간 : | 김예슬 기자

가장 객관적이고 투명한 it 매체 앱스토리

과거 ‘귀신 잡는 해병’이 새빨간 피를 흘리며 무참히 죽어가는 게임이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몇몇 어른들의 전의를 불태우곤 한다. 그 어른들은 12세부터 열심히 그 게임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 게임의 두 번째 시리즈에서 해병의 빨간 피는 19세 이상부터 볼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12세 사람들은 검은 피를 흘리고 좀 덜 잔인하게 맞이하는 해병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다. 참으로 오묘한 게임 심의 등급의 세계다. 

 

그런데 최근 게임 중심으로 확산되는 많은 VR 콘텐츠가 이러한 심의 등급의 경계선 밖에서 공급되고 있다. 결국 제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지만,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1’은 12세 이용 가로 분류된 버전으로 이미 시대를 풍미했다

 

스타크래프트 2’는 PC방에서 대부분 12세 이용가 버전이 공급되지만 청소년 불가 버전도 있다

 

 

VR 콘텐츠의 목적 : 실감 나는 게임

 

VR, 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콘텐츠라는 것이 지금은 결국 게임으로 집결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총을 더 실감 나게 쏘다가 더 실감 나게 죽으려고, 전투기를 더 실감 나게 조종하다가 더 실감 나게 떨어져 죽으려고 VR 게임을 즐긴다. 물론 산업 교육용 VR 콘텐츠도 있다. 물론 마찬가지로 더 실감 나게 위험을 피하라는 목적이다. 그리고 처자식 손잡고 VR 테마파크로 가서 더 실감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놀이기구 VR 콘텐츠에 재화를 지불한다. 

 

VR 콘텐츠의 목적은 ‘실감’이다. 실감 나지 않는 VR은 V‘R’이 아니라 그냥 ‘V’R 일 뿐이다. 수많은 헤드셋과 음향기기, 컨트롤러, 소프트웨어와 디스플레이가 더 큰 실감을 위해 뛰고 있다. 그 실감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유혹하는 첩경이 바로 게임이다. 지금 당장 회사 결재문서를 실감 나게 만들다가 부장님한테 실감 나게 가상으로 혼나고 싶지도 않고, 실감 나게 설거지를 가상으로 해서도 안 되고, 실감 나게 안전 교육하는 것이 급한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VR 시장이 열리는 지금, HMD(Head Mounted Display)를 처음 써보려는 사람들에게, HMD 구매를 독촉하기 위해서는 VR 게임의 위대함을 자극해야 한다.

 

결국 지금 VR 콘텐츠의 목적은 ‘실감 나는 게임’이다. 요컨대, 서두에 언급한 그 해병의 죽음을 보는 것에서 전환되어, 내가 그 해병이 되는 것이다. VR 시대 이전, 그러니까 현재, 우리 주변의 놀라운 게임들을 둘러보면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른 플레이어를 총으로 죽이든, 풍선을 터뜨려 죽이든 어쨌든 소멸시켜야 한다. 칼을 쓰든 마법을 쓰든 괴물을 죽여서 레벨을 높인다. 다른 군주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5만 명을 출전시켜 적군 5만 명을 죽이고 아군 1만 명을 살리기 위해 전략을 강구한다. 춘리와 달심을 대결시켜서 다른 한쪽을 죽이든, 버섯 먹고 끝판왕을 폭파시키든, 아니면 내가 죽든, 게임의 원리는 죽음이다. 수위를 조금 낮추면 파괴가 되고, 수위를 더 낮추면 경주나 레이싱이 되고, ‘건전’해지면 육성이나 건설이 되겠지만, 그럴수록 지겨워진다.

 

그리고 ‘죽음’과 관계되지 않은 나머지 게임은 모두 ‘육체’로 연결되어 있다. 더욱 실감 난 방법으로 자극적인 육체를 표현하는 것에 VR 유저들은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다. 결국 VR 콘텐츠는 선정과 폭력으로 귀착되는 형국이다. 그것도 아주 실감 나게 빠져든다.

 

진짜 만지는 것처럼 만지는 느낌을 느끼고 싶다

 

 



VR 콘텐츠 유통 : 경계가 사라진 시대

 

‘경계의 소멸’이 요즘 유행이다. 자동차는 IT업계의 화두가 되었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배터리를 확인하는 한편, 스마트폰은 금융거래 단말기가 되었으며, 로봇은 생명공학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산업 간의 경계, 인간과 기계와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문제는 제도다. 제도의 문제는 목차이며, 목차의 문제는 경계다. 그래서 나라가 제공하는 공개 법전을 찾아 내가 원하는 분야에 대한 규정을 찾기 위해서 목차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목차부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 수많은 의구심만 가득 안고 학창시절 내 학업성취도에 대한 회의감만 몰려온다. 

 

제도는 경계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알지 못하면 내가 원하는 단 한 문장조차 찾을 수 없다. 그만큼 제도는 경계 의존적이다. 그리고 제도의 경계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어진다.

 

기준이 있어야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VR 기기를 게임용으로 두루 쓰는 통에 VR ‘콘텐츠’는 결국 ‘게임’을 일컬음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게임 프로그램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VR 콘텐츠 제재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해병의 죽음을 목도한 사람들이 ‘공 3, 방 3 업’ 해병 집단의 위력을 발견하고 프로게이머가 된 시절에는 엄마가 게임을 사주지 않으면 게임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가 게임을 사주지 않은 아이들이 PC방에 가서 그 게임을 신나게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게임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당국에 등록 및 신고를 하고 심의 및 등급을 받아야 했다. 매장 진열대에 있는 게임이든,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게임이든, 유통 공간을 당국이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은 통제될 수 있었다. 그 통제된 등급 표를 엄마가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추가적인 감정적 통제가 가능했다. 당국이 통제하는 온라인 유통 공간에서 자녀들은 ‘성인인증’이라는 다다를 수 없는 꿈을 향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해야만 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유통에 대한 경계, 나라와 나라 간의 경계, 지불 주체의 경계가 우리나라 청소년과 분별력 없는 일부 어른들을 게임중독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경계가 사라진다. 우리나라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해외 사이트에서 게임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엄마 없이, 성인인증 없이, 엄마가 배정해준 무기명 예산 중에서 게임 구매에 일부를 지불할 수 있는 유통 플랫폼이 등장했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가 자녀의 VR 게임기를 검열하다가 교복 입은 여자가 등장하는 게임을 발견한다. ‘제재’에 대한 필요성 제기가 시작된 순간이다.

 

이 게임이다



VR 콘텐츠의 제재 : 전쟁의 서막

 

제재를 한다는 것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제도는 경계와 정의에 의해 확립된다. 해외 유통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제재하기 위해서는 ‘해외’와 ‘유통’을 정의하고 우리나라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경계와 유통, 제작 간의 경계를 그어야 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실에서 한 해외 플랫폼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해외 게임 등급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나라 게임은 아주 엄격하고 공정한 심의 등급을 받기 때문에 청소년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제재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해외 사이트와 해외 게임은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해외 게임이 우리나라에 판매된다면 우리나라 당국의 기준으로 똑같이 심의 등급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 귀결은 곧, 해외 게임을 무슨 근거로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게임으로 정의할 것이냐는 문제를 촉발시켰고, 그 문제는 ‘한국어 지원’ 여부를 경계선으로 하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해외 게임’을 정의하면 된다는 제도적 결론에 이르렀다.

 

‘스팀’ 홈페이지에서 기본 언어인 ‘영어’ 상태로 볼 때 신규 인기 게임 1위를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어’로 설정하면 그 게임은 순위에서 사라져 있다

 

물론 어떻게든 찾아낼 수는 있다

 

그 결과 많은 해외 게임들이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임도 그 해외 유통 플랫폼을 통해 ‘해외’ 게임의 경계선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한국어 패치를 지원했다. 제재를 하기 위해 기준을 만들고 정의를 내렸더니 그 경계선 안에 결려 들어가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그 경계선 밖의 방법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유통 플랫폼 ‘스팀’이 심의 등급을 받아야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이다. 단순 중개자로 볼 것인지, 또 하나의 콘텐츠 공급자로 볼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과점적인 스팀의 업계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사회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스팀이 ‘블리자드’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을 만든 당사자도 아닌데 그 게임을 들고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여러 가지로 귀찮을 수밖에 없다.

 

‘스팀’은 간혹 엄중한 경고를 통해 콘텐츠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그래도 ‘페이지 보기’를 누르면 게임 구매의 기회를 준다

 

물론 스팀은 이미 예전부터 유통되는 게임의 선정, 폭력성 등에 대해 자체 경고와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2014년 말께 그 국회의원실에서 제기한 문제와 더불어 다양한 해결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재 기준이 모호해졌다. 자고로 ‘모호’해지면 회색분자니 박쥐니 하며 양쪽에서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결국 스팀은 지난 6월 모든 게임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그 방침을 밝히면서 보도된 스팀 관계자의 토로에 따르면 ‘야한 게임이나 피 튀기는 게임도 문제지만 인종 차별이나 정치적 문제까지 감안하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우리도 이제 모르겠다’며 이제 판단은 유저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직 우리나라 당국도 해외 플랫폼 유통 게임에 대한 실효적 제재 방안을 강구하지 못 한 상태다. 즉, 플랫폼에서는 제재를 포기했고, 제재 당국에서는 제재의 경계선을 찾느라 여전히 돋보기 들고 땅만 쳐다보는 꼴이다. 무언가 마땅한 제재를 해야 하는데 포문은 열어놓고 발포하질 못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작 가장 혼란스러운 당사자는 엄마 몰래 교복 입은 여자가 나오는 게임을 구매해서 VR 기기로 해봤던 그 자녀다.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고 그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사실 제재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중학생이 19세 미만 이용불가 게임을 하고 있다며 자못 엄중하게 보도하는 언론 기사 오른쪽에는 그에 못지않은 선정적 사진들이 ‘HOT’이라는 표제하에 도열해있고 누구나 클릭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제재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

 

 

‘스팀’에서 상당히 건전한 인기 태그 목록을 갖춘 VR 게임을 찾아볼 수도 있다


 



다가올 VR 시대의 VR 콘텐츠

 

자녀의 VR 기기를 들여다본 엄마가 자녀에 대한 배신감과 지난날 자신의 교육방침에 대한 자괴감으로 슬픔에 젖게 만들었던 그 게임은 일본 제작사 ‘일루전’에서 만든 ‘VR 차 노조(그녀)’라는 성인용 게임이다. 이 회사는 이전에도 수많은 성인용 게임을 만들었고, 스팀에는 이 게임 외에도 ‘Sexual Content’, ‘Nudity’ 등의 자극적 태그에 해당하는 수많은 게임이 올라와 있다. 

 

다른 영상물과 콘텐츠는 성인인증 등의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스팀에서는 아무런 기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모호한 기준과 경계를 핑계로 손놓고 있는 제재 당국도 문제다. 모든 규제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비난이 두려워 시도하지 못하고, 완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시간만 끌고 있는 집단은 사회적 규범을 명문화할 자격이 없다. VR 콘텐츠의 발전과 더불어 부작용까지 함께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당국’의 몫이다. 

 

그런데 VR 콘텐츠 제재라는 것에 마주 섰을 때 더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VR은 저 유명한 4차 산업혁명의 수많은 선두 첨병 중 하나다. 이렇듯 인류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VR이 게임에서 머무를까? 그렇지 않다. VR 콘텐츠가 그냥 게임인 줄 알고 게임처럼 들여다보거나, 영상물을 규제하는 것처럼 비슷하게 접근하면, 시간이 갈수록 그 경계선이 점점 더 흐릿해질 텐데, 그 때가서 또 돋보기를 아무리 갖다 대고 다시 들여다봐봤자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이토록 4차 산업혁명과 VR에 대한 기대가 뜨거운데 게임만 하려고 VR이 발전하진 않을 것

 

VR은 현실이다. VR이 사회와 인생의 필수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현실보다 가상 현실이 더 현실 같은 현실을 마주할 VR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시대의 제도적 기반을 지금부터 만들지 못하면 기술부터 사회적 합의까지 많은 것을 놓치고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 아이가 알몸의 여자를 실감 나게 만지지 못 하게 막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여학생의 교복 치마를 들추는 성범죄를 가상현실에서 혼자 즐기는 것을 상관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VR 콘텐츠 제재에 대한 것은, VR 시대에 만나게 될 수많은 콘텐츠와 그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우리 삶에 대한 문제다. 어느 한 부분에 매몰되어, 지금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문제에만 둘러싸여 그것만 수면 밑으로 덮기 위한 제재는 훗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걸맞게 제재나 규제 역시 기술과 문화, 제도와 사용자 간의 폭넓은 합의를 통해 장기적 관점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VR 콘텐츠가 게임에만 머물 것은 아니다.

 

보는 방법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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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예슬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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