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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그때 그 전화기

기사 입력시간 : | 박마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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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응답하라1997>)부터 응팔(<응답하라1988>)’에 이르기까지, 응답하라 시리즈는 말 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가히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된 콘텐츠는 바로 추억팔이.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의 시대 배경과 사물, 그 시대의 감성까지 그대로 가져와 시청자들을 추억에 젖게 만드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함께 자라는 쌍문동 골목과 오래 된 TV, 라디오가 그렇고 이웃 간의 끈끈한 정과 이문세의 별밤이 그렇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땐 그랬지하며 반가운 미소를 짓게 되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이라도 그땐 그랬구나하며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전화기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것은 집에 있는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공중전화 정도다. 그런데 과연 이것들이 전부일까? 1988, 그때 그 통신기기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공중전화 



 

응팔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전화기는 바로 공중전화다첫 눈 오는 날(박보검)이 덕선(혜리)에게 영화 보러 가자며 데이트 신청을 할 때에도 택은 어김없이 공중전화를 사용했다눈 오는 골목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택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1926년 전화국우체국 등에 처음으로 설치된 공중전화는 1980년대 중요한 소통수단 중 하나였다공중전화가 설치되고 보급될 당시에만 해도 집전화가 설치된 가구가 많지 않았고공중전화 요금이 저렴했기 때문에 전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중전화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이전까지 시내 통화만 가능했지만 1982년부터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가 보급되었으며, 1986년에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카드형 공중전화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미리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하는 전화카드는 생각보다 수요가 높지 않았는데대신 서울올림픽 개최 기념으로 발행된 호돌이 전화카드 등 특별한 전화카드들이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일상적이던 1990년대만 해도삐삐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통화수단이었던 공중전화는 점차 휴대전화가 보급되며 자취를 감추었다지금은 7만 여대 중 4만 여대가 군부대에 설치되어 있는데예전과는 달리 전화요금이 많이 올라 휴대전화 통화요금보다 비싸다고 한다그래서 최근에는 군대간 가족남자친구 선물로 공중전화 카드가 인기라고또 이용자가 줄면서 버려지는 공중전화 부스를 무인안내소, ATM, 휴대전화 충전소 등으로 활용하는 형태도 늘고 있다.

 

 



집 전화


 

눈 오는 밤 택이 덕선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덕선은 무엇으로 받았을까바로 집 전화다응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멀리 사는 가족에게 안부를 전할 때이웃에게 기쁜 소식을 알릴 때 주로 집 전화를 사용한다특히 집 전화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쌍문동 어머니들덕선이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피켓을 들고 입장하게 되었을 때에도 덕선 엄마는 집 전화를 통해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민간 전화는 1902년 처음으로 시작되었지만가입자 수는 3년 간 50건을 채 넘지 못했다당시 설치비용이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이후 1960년 경제개발과 더불어 통신 분야가 발전하며 전화 수요가 크게 늘었는데반면 전화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1970년대에는 전화기 값이 폭등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그러나 1980년대에는 드라마에서 보여지듯 대부분의 집에 유선 전화기가 보급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교환원 없이 바로 상대방에게 연결되는 자동 전화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1987년에는 1000만 회선을 돌파해 드디어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렸다.




한편, 쌍문동 벼락 부자 정환이네는 집 전화도 뭔가 다르다. 다른 집이 꼬불꼬불한 유선 전화기를 쓰는 것과는 달리 이동이 자유로운 무선전화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무선 전화기는 유선에 비해 통화음질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편리하고 가격이 비싸 부의 상징으로 불렸다.

 


카폰


 


휴대전화

 

공중전화집 전화에 비해 삐삐나 카폰이 우리들에게 낯선 이유는 이들이 반짝 빛났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카폰이야 있는 집에서 주로 사용했으니 그렇다 쳐도한때 1500만 가입자를 모으며 공중전화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통신수단이었던 삐삐를 단숨에 몰아낸 존재가 바로 휴대전화다. 1980년대 말로 갈수록 지금의 스마트폰과 닮은 제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휴대전화 역시 19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처음으로 등장했다우리나라의 첫 휴대전화는 지금은 철수한 모토로라가 국내에 진출하며 내놓은 다이나택 9800이다무게는 700 g, 연속통화 시간은 2시간이며 가격은 240만 원이었다지금으로 따지면 143g짜리 아이폰6S 5개를 들고 다니며 통화하는 셈인데이것도 1983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무게에 불과하다.

 


 

모토로라가 다이나택 9800을 정식 출시하자삼성에서도 곧이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첫 국산 휴대전화 SH-100을 공개했다외국 제품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분석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제품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휴대전화 산업에 있어서는 서울올림픽만큼이나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까삼성전자의 SH-100은 서울올림픽에 발맞춰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일반 대중에게 판매를 시작한 것은 1989년 상반기부터다당시로서는 국내 최저가인 165만 원에 판매되었으며무게는 여전히 700g에 육박했다크기 역시 안테나를 포함하면 40cm에 달해 냉장고폰’, ‘벽돌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달리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서울, 부산, 제주 등 17개 지역으로 제한적이었으며, 보급규모는 1,000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세계적인 흐름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초기신장률이 카폰의 2배에 달해 정부는 물론 업체 다수가 주목하는 분야였다. 1990년대 중반 드디어 모든 통신수단을 제치고 휴대전화가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1988년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해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조금 더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일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 통신기기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글 : 박마리아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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