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대를 모았던 넷플릭스는 실패했다. TV에서 이용할 수 없으며, 갖춰놓은 콘텐츠도 많지 않았던 넷플릭스는 론칭 후 잠시 동안 마니아들의 화제를 모으다 곧 그 화제성을 다하고 말았다. 공격적 마케팅에 국내 소비자들은 반응하지 않았고,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시장에서 사장될 것처럼 느껴졌던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를 직접적 매출 창출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보다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넷플릭스 서비스는 사실상 실패했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은 시장에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을 발표한 사업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8,00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DVD 렌털 서비스가 기업의 주요 사업이었던 넷플릭스는 현재 정액제 중심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다. 9.99달러를 시작으로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 정액제는 제공 화질, 동시 접속 허용수 등에 차등을 둔 상품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플랫폼, 넷플릭스

국내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은 그들의 주력 사업 분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지난 1월 신규로 서비스를 시작한 130개국에 대한민국이 포함돼 있었으며, 글로벌 콘텐츠 공룡으로 불리는 넷플릭스의 비디오 서비스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시장은 주목했다. 상품 구성 및 단계적 가격 체계는 미국과 동일하게 적용돼 있으며, 멤버십 가입 시 첫 달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드라마 애청자들을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넷플릭스 서비스로 몰려들었고, 그렇게 넷플릭스는 국내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비스 6개월이 지난 현재 시점의 성적표는 당시 예상된 수치를 훨씬 밑도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이용자는 약 6만 명에서 7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나마도 멤버십 가입자의 다수가 무료 서비스 기간인 가입 1개월 후 서비스를 해지하고 있어,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국내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유료 이용자는 약 100만 명 규모로, 이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사실상 실패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넷플릭스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익 창출은 국내 시장에서 그렇게 사라질, 실패한 서비스의 하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넷플릭스의 움직임, 새로운 방향으로

넷플릭스 실패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콘텐츠의 부족’이다. 넷플릭스 킬러 콘텐츠인 자체 제작 드라마의 많은 수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서비스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좀처럼 콘텐츠의 수는 증가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의 킬러 콘텐츠였던 ‘하우스 오브 카드’가 업데이트된 것도 서비스 론칭 이후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소송을 염려해 자막 파일이 제작되지 않던 ‘데어데블 시즌2’를 넷플릭스에서 보기 위해 멤버십에 가입하고, 무료 기간 동안 콘텐츠를 열람한 후 유료 결제가 이뤄지기 전에 멤버십을 해지했다. 그나마 트라이얼 기간이 넘어서도 지속적인 사용을 염두에 뒀던 이용자들조차도 매력을 느낄 콘텐츠가 없었기에, 이용자들은 무료 기간 이상의 멤버십 유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넷플릭스 서비스의 강점으로 꼽히는 콘텐츠 추천도 부족한 데이터베이스 안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지금도 무료 멤버십 가입 후 보고 싶었던 드라마 몇 시즌을 골라본 후에는 볼 게 없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해지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킬러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

많은 글로벌 서비스들이 야심 차게 국내 진출을 선언하고, 또 그중 대다수는 국내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하고 있다. 넷플릭스 또한 한국 현지 시장 공략에 실패한 해외 서비스로 기록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최근 행보는 그런 시장 전망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용자를 늘리고 직접적인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넷플릭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초반 국내 흥행을 이끌었던 미국 드라마 ‘데어데블 시즌2’

지난 6월에는 넷플릭스의 최고 경영자인 히드 헤이스팅스와 최고 콘텐츠 책임자 테드 사란도스가 방한했다. 넷플릭스의 국내 성과를 고려해 CEO와 CCO가 방한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넷플릭스 미디어데이 행사를 통해 한국 시장에 더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을 발표했다. 넷플릭스 미디어데이를 통해 발표된 내용들은 넷플릭스의 한국 비디오 콘텐츠의 제작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며,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매출 및 사업 방향에 대한 것이 주가 아니었다.

한국을 콘텐츠 허브로 삼다

넷플릭스는 동영상 관련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영상 제작사'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자사 서비스를 위한 콘텐츠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비롯한 다수의 자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자체 제작 드라마들이 성공을 거두고 그에 따라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한 넷플릭스는 점차 자체 제작 콘텐츠의 비율을 늘리고 있다. 지난 2014년 공개된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마르코폴로’는 시즌당 제작비가 한화로 약 1,000억 원에 이를 정도니, 넷플릭스가 얼마나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오는 2019년까지 매년 20여 편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에 넷플릭스가 제작비 5,000만 달러를 투자하다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의 제작에도 넷플릭스는 뛰어들고 있다. 이미 아프리카 소년병의 이야기를 담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을 영화로 선보인 바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IP인 만화 '데스노트'의 영화화도 넷플릭스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와호장룡의 속편도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됐으며, 유명 할리우드 배우인 아담 샌들러의 신작 ‘더 두 오버’ 또한 이들이 제작한 영화다.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여된, 국내 배우 수현이 출연하는 ‘마르코폴로’

국내 시장에서도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함께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유통, 아울러 영화 제작에도 손을 뻗칠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는 제작비 전액을 넷플릭스에서 지원하며, 주인공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의 ‘드라마월드’와 같은 드라마, 한국 참가자들의 서바이벌 경쟁 예능 프로그램 ‘비스트 마스터즈’도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대를 모았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부진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대체 왜 국내 시장, 그리고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에 이렇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진짜 노림수는 ‘중국 시장’

국내 소비자들의 동영상 스트리밍 콘텐츠의 소비는 넷플릭스가 내세우고 있는 기간제 무제한 정책보다는 개별 콘텐츠의 구매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VOD 매출 현황 및 광고 매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은 월정액 상품(27%)보다는 개별 콘텐츠의 1회 성 결제(73%)를 보다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콘텐츠에서도, 상품 구성에서도 당분간 국내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가 ‘태양의 후예’의 글로벌 유통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나라를 단순한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판매처가 아니라 콘텐츠의 제작 허브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국내 시장으로 이야기를 한정하자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넷플릭스 서비스의 콘텐츠 부족을 자체 콘텐츠 제작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미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오리지널 자체 콘텐츠를 제작 및 유통하고 있다.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울러 넷플릭스는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를 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지역에 유통할 전략을 세우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화권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미국, 캐나다, 남미에 유통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유통은 경쟁력 있는 한국 콘텐츠의 확보,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을 위한 공략의 방법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제작된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을 제작 콘텐츠 및 창작자를 한국 내에서 수급해 자사의 인력으로 활용하는 콘텐츠 생산의 허브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은 흐름이라면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는 거대한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덕수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