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인터파크, 그리고 SK엔카. 상이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기업의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탄생한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한국 벤처 기업의 창업 95%는 기업 내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회사 내의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이뤄지든 혹은 구성원들이 모여 기업 내에서 향후의 앞날을 준비하든 대부분의 벤처 기업들은 사내의 공식 혹은 비공식적 지원을 통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많은 기업들은 기존의 수익이 안주하기 쉬운 성질을 극복해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신시장을 효과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위해 ‘사내벤처’라는 이름의 제도를 활발하게 운용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사내벤처 제도

미국의 경영학자로 현대 경영학을 창시한 학자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는 1974년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업의 혁신에 대해 “혁신 활동이 당장의 성과를 달성하려는 노력들과 함께 이뤄질 수 없다”며, “개별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활동을 기존 사업 영역과는 조직적으로 독립돼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발상에 기인해서, 기업들이 기존의 사업영역과는 다른 분야의 개척을 위해 사내에서 설립한 독립적인 기업형태의 조직을 일반적으로 사내벤처라고 부른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필요성을 사내벤처에서 찾다

사내벤처 제도란 기업의 임직원과 회사가 공동투자를 통해 사내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상용화를 진행하는 일련의 제도로 운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기업은 자신들의 기존 사업영역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의 개척을 위한 아이템을 발굴해 내기도 하고, 탄탄한 수익모델을 갖춘 사내벤처를 독립회사로 분사시키기도 한다.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꾸려진 상용화 제품을 가지고 이들이 독립회사로 분사할 시, 필요한 경우 사내벤처 제도를 시행한 회사는 독립회사에 투자를 하거나 일정한 지원을 행하기도 한다.

사내벤처에서 독립한 기업이 본 회사에 큰 수익을 가져다준 경우도 많다

사내벤처 제도는 아직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성장이 유력한 시장에, 기존의 사업영역과는 별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도전적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기업이 주로 운영하는 제도다. 단순히 한 기업의 구성원들이 주축이 돼 퇴사 후 새로운 기업을 설립해 R&D를 시작하는 경우는 사내벤처로 이야기되지 않지만, 기업 내에 마련된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신사업의 기틀이 마련된 후 독립하는 경우는 사내벤처의 사례로 이야기된다. 또한 기업의 사정으로 일정 파트를 분사시키는 형태 또한 사내벤처와는 다르며, 유망한 신시장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독립해 도전하는 경우가 사내벤처 사례의 대부분이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며 주목받기 시작

사내벤처 제도라는 개념이 탄생하고 이를 시도한 기업들은 초창기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70년대 초반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25% 이상이 사내벤처 제도를 운용했으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1970년대 후반에 들어 사내벤처 제도를 폐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일궈진 성과는 일시적 성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제도를 운용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제대로 된 혁신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내벤처 제도는 1980년대 미국의 벤처 캐피털 열풍을 타고 다시금 한 차례 시도됐으나, 1980년대 중반의 경기 불안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SK에너지의 사내벤처였던 SK엔카

사내벤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 미국의 경기가 호전되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활발하게 사내벤처 제도가 시도됐다. 이전까지는 사내벤처의 구성원들은 기업의 활동 영역에 정통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사내벤처를 통해 만들어지는 제품 혹은 서비스도 기존의 기업의 사업영역과 겹치거나 기존 시장을 침식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완연히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그 기업의 사업영역과는 완전히 별개의 새로운 상품들이 개발되고 또 이것이 성과를 거두는 사례가 많아지며 사내벤처 제도도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잠시간 기존의 사업조직과 분리돼 테스크포스팀에 가까운 형식으로 운영된 사내벤처 제도는 여러 성공 사례들이 나타나며 다양한 형태를 띄게 된다.

2013년 다음으로부터의 분사가 결정된 카닥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의 IBM 직원 4명이 창업해 분사한 소프트웨어 기업 티볼리는 독립 이후 성공 가도를 달려 1996년 IBM에 총 7억 5,000만 달러의 금액으로 다시 인수됐다. 기존의 기업에서 독립한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또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면서, 미국 등의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본격적인 사내벤처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사내벤처의 성공사례, 네이버와 인터파크

일본 아이치현의 아도마텍스라는 기업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도요타 자동차의 사내벤처 기업 1호로, 세라믹 엔진을 만들기 위한 신물질을 연구하던 중 우연한 폭발사고로 얻어낸 물질을 연구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둬낸 사내벤처의 성공사례로 이야기된다. 미국의 3M은 사내벤처 제도를 전 세계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포스트잇, 스카치테이프와 같은 제품들이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개발된 상품으로 이야기된다.

삼성SDS에서 독립해 큰 성공을 거둔 네이버

국내에서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가장 큰 성장을 일궈낸 기업으로는 네이버가 손꼽힌다. 네이버는 삼성SDS의 사내벤처 제도는 ‘사내 벤처포트’ 제도를 통해 탄생한 기업이다. 삼성SDS의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해진 의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내 공모 1호 벤처인 ‘웹글라이더팀’이 네이버의 시작이었다. 이해진 의장 중심의 사내벤처는 1999년 네이버컴이라는 회사로 독립했으며, 이것이 현재의 네이버로 이어지게 된다. 삼성SDS는 약 20%의 지분을 가지고 네이버컴에 자금을 지원했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도 사내벤처 제도로 탄생했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인 인터파크 또한 사내벤처로 시작한 기업이다. 데이콤의 소사장 제도에서 시작된 인터파크는 삼성SDI 출신의 데이콤 이기형 대표의 인터넷 상거래 사업 제안에서 시작됐다. 1996년에 상용 서비스에 돌입한 인터파크는 1997년 데이콤의 실적 악화로 정리대상이 된 상태에서 이기형 대표와 사업팀 구성원들이 지분을 사들이며 회사의 주인이 됐고, 인터넷 서비스의 발전을 맞아 날개를 단 듯 빠른 속도로 성장해 1999년에는 기업공개에 성공하게 된다. 한편 인터파크 내의 사내벤처인 구스닥 또한 이후 법인으로 독립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미국의 이베이에 매각돼 인터파크에 큰 수익을 가져다준 바 있는데, 이 인터파크 사내벤처 구스닥이 바로 현재는 인터파크보다 더 큰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G마켓이다.

지속적으로 확대돼 가는 사내벤처 제도

인터넷 혁명 이후 모바일 혁명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다시금 시장을 강타했다.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발상, 신개념의 서비스가 필요해진 상황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사내벤처 제도는 다시금 기업들의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하는 사내벤처 제도의 운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C랩’ 프로젝트를 통해 14개 사내벤처를 분사시켰으며, LG전자도 ‘에이캔버스’와 ‘인핏앤컴퍼니’의 사내벤처 2곳을 분사시켰다.

삼성전자는 올해에도 5개의 사내벤처를 독립시켰다

네이버의 경우에는 폐쇄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밴드’를 운영하는 캠프 모바일을 지난 2013년 분사시켰다. 웹툰 또한 사내벤처 제도의 형태로 독립경영하고 있는 상태다. 카카오 또한 캐릭터 상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카카오 프렌즈를 분사해 독립경영하고 있다. 네이버를 사내벤처 제도로 탄생시킨 삼성SDS도 사내벤처 프로그램 공모전 ‘씨드랩’을 개최해, 또 한 번의 사내벤처 성공사례를 만들고자 움직이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이 최초로 사내벤처 시스템을 가동했으며, 서울메트로도 르호봇과 사내벤처 지원 협약을 맺은 바 있다.

LG전자 CTO 부문에서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에서 독립한 에이캔버스

네이버, 인터파크와 같은 기록적인 성공사례가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기의 기업들을 제외한 다른 기업 및 단체들은 사내벤처보다는 스타트업의 투자와 육성에 보다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스마트 혁명 이후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사내벤처 제도이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이전과 같은 커다란 성공사례가 나올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의 시장에서, 젊고 패기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사내벤처 제도에 대한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덕수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