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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게임사, 블리자드

기사 입력시간 : | 최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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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게임 이용자들에게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기업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꼽힐 곳이 바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일 것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자회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의 어바인 시에 위치해 있는 미국의 게임 개발사이자 배급사다. 우리에게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국민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온라인 RPG의 대명사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그리고 현재는 PC방 문화를 다시금 부활시킨 주역 ‘오버워치’를 제공하고 있는 게임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게임사다.

 

 

꿈 많은 세 명의 공학도, 게임사를 차리다

우연히 UCLA의 세 공학도가 만나고, 또 의기투합해 한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회사를 설립한 주역은 ‘앨런 애드햄(Allen Adham)’, ‘마이크 모하임(Mike Morhaime)’, 그리고 ‘프랭크 피어스(Frank Pearce)’ 이렇게 세 명이었다. 파트타임으로 시에라, 인터플레이 등의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해 온 앨런 애드햄은 UCLA 입학 전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리랜서로 게임 개발을 하며 용돈을 벌었고, 공부에 필요하다며 거짓말을 해서 산 PC를 게임을 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블리자드 창립자며 최근 블리즈콘을 통해 회사 복귀를 알린 앨런 애드햄

 

UCLA를 졸업한 뒤 앨런 애드햄은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임 관련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같은 학과의 친구였던 마이크 모하임, 프랭크 피어스의 두 명을 설득해 이 세 명이 함께 의기투합해 게임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앨런 애드햄은 유럽 유학비로 아버지에게 받은 1만 달러를 창업 자금으로 사용해 미리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였으며 당시에는 이미 웨스턴디지털에 취직한 상태였던 마이크 모하임을 설득한 끝에 합류 의사를 얻어냈으며, 마이크 모하임도 앨런 애드햄처럼 회사 운영을 위한 시드머니 1만 5천 달러를 자신의 조모로부터 빌려 회사에 합류하게 된다. 한편 또 한 명의 회사 설립의 주역인 프랭크 피어스도 마이크 모하임 합류와 비슷한 시기에 이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의 설립에 함께 하게 된다. 이렇게 설립돼, 후일에는 게임계에 전설적인 업적을 쌓아올리게 된 이 회사의 이름은 ‘실리콘앤시냅스(Silicon & Synapse)’였다.

 

 인터플레이를 통해 출시된 블리자드의 최초의 오리지널 타이틀 RPM레이싱

 

실리콘앤시냅스는 창업 후 한동안은 오프라인 보드게임의 유통과 함께 PC 게임을 콘솔용으로 컨버전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당시 이와 같은 게임 컨버팅 작업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하청 작업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창업자 3인이 꿈꾸던 게임 개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곧 이들의 가능성에 주목한 게임사 인터플레이의 창립자인 ‘브라이언 파고’의 눈에 띄면서, 실리콘앤시냅스는 자신들의 손으로 오리지널 타이틀인 ‘RPM 레이싱’이란 게임을 인터플레이 유통으로 출시할 수 있게 된다. RPM 레이싱을 통해 4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인 실리콘앤시냅스는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타이틀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탄생


많은 기대를 받았던 실리콘앤시냅스의 로스트바이킹스

 

RPM레이싱에 이어 실리콘앤시냅스가 내놓은 게임은 ‘로큰롤 레이싱’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들은 바로 ‘로스트 바이킹스’라는 게임의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로스트 바이킹스가 완성돼 갈 무렵, 이들은 브라이언 파고로부터 게임이 너무 어려우며 단조롭다는 지적을 듣게 된다. 하지만 브라이언 파고의 의견을 받아들여 게임을 수정하기에는 실리콘앤시냅스는 남아있는 여력이 없었다. 게임을 수정하기 위해 이들은 브라이언 파고로부터 추가 지원금을 받아내고, 지적사항을 수정한 완성본을 시장에 출시했다. 게임의 완성도는 브라이언 파고에게 시연한 초기 버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동시기에 출시된 웨스트우드스튜디오의 ‘듄2(Dune2)’라는 게임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실시간 전략 게임인 듄2는 실리콘앤시냅스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싱글 플레이 전용인 듄2를 기반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면 이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비전을 발견한 것이다. 실리콘앤시냅스는 로스트 바이킹스의 뒤를 이어 듄2를 기반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 요소를 추가하고, 판타지 세계관을 가미한 게임의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당시 실리콘앤시냅스의 자금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던 때였다. 적자로 문을 닫기 직전까지 몰렸던 실리콘앤시냅스는 당시 인터플레이의 자회사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으며, 앨런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직원들의 임금 지급을 위해 개인 신용카드를 사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행히도 어려움을 겪던 실리콘앤시냅스로 손을 내밀어 준 기업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유명했던 ‘데이비슨앤어소시에이츠(Davidson & Associates)’였다. 이들은 회사 매각의 조건으로, 실리콘앤시냅스의 임직원들에게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자유로운 개발을 보장했다. 회사 매각으로 안정을 찾은 이들은 사명을 카오스 스튜디오로, 그리고 그 이름을 먼저 선점한 기업에게 소송을 당한 이후 마침내 사명을 현재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로 바꾸게 된다.

 

최근 리마스터가 발표된 원조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로 이어진 성공


긴 기다림 끝에 출시된 작품, 디아블로3

 

사명을 변경한 이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자신들의 첫 자체 유통 작품인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 (Warcraft: Orcs & Humans)’를 마침내 1994년에 선보이게 된다. 이 게임은 그들에게 모티베이션을 제공했던 게임인 듄2를 지나치게 벤치마킹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으나, 동시에 단순한 아류작에 그치지 않은 여러 시도들이 대중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게임이었다.

 

자금난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게 있어 워크래프트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워크래프트는 그동안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던 인터플레이가 아닌 이들 자체 유통을 진행한 최초의 게임이었다. 자체 유통의 과감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30만 장이 넘는 판매고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줬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가 단순한 게임 개발 스튜디오가 아닌 메이저 게임 유통사로 올라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디아블로를 만든 숨은 공로자, 저스티스리그 태스크포스

 

워크래프트 출시 1년 뒤인 1995년에 블리자드는 성공작의 후속 작품인 ‘워크래프트2’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전부터 마이크 모하임이 이야기해 온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구현한 워크래프트2를 통해 이들은 생애 최초로 게임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하게 됐으며, 이듬해에는 확장팩을 출시하며 당시까지 실시간 전략 게임 장르에서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커맨드앤컨커 시리즈의 ‘웨스트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 당시 이들이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함께 개발을 진행해 세상에 내놓았던 게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는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DC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소재로 삼은 대전 액션 게임 ‘저스티스리그 태스크포스(Justice League Taskforce)’였다.

 


집착에 가까운 게임 완성도 구현

  

스타크래프트 성공 이후로는 마이크 모하임이 회사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저스티스리그 태스크포스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서로 다른 두 개발사가 각기 다른 버전으로 세상에 내놓은 게임이었다. 닌텐도 슈퍼패미콤용 게임의 개발사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으며, 경쟁 콘솔이었던 세가 메가드라이브용은 ‘콘도르(Condor)’라는 곳에서 담당했다. 같은 게임을 개발하던 것이 인연이 돼 관계를 이어가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콘도르는 1996년 한 가족이 되게 된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콘도르를 인수하는 형태로 두 회사의 합병이 이뤄졌다. 이후 콘도르는 ‘블리자드 노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이들이 개발하던 게임은 합병이 이뤄진 1996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디아블로(Diablo)’였다.

 

블리자드의 네 번째 세계관이 열리다, 오버워치

 

워크래프트 시리즈, 그리고 디아블로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1997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프랑스의 ‘비방디 그룹’에 다시금 합병된다. 비방디의 후원 아래 전폭적인 개발 지원을 통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1998년 당초보다 출시가 2년 늦어진 신작 게임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이 게임은 성공을 거둔 동사의 전작들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를 압도하는 성적을 거두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게임으로 군림하고 있는 히트작 ‘스타크래프트(Starcraft)’가 바로 그것이었다. 스타크래프트 출시 당시는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PC 사용 인구가 스타크래프트를 즐겼으며, 출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후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성공 신화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온라인 MMORPG의 절대자로 군림하고, 긴 개발기간 끝에 선보인  ‘오버워치(Overwatch)’는 꺼져가던 국내 PC방 사업에 다시금 불을 붙이고 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에 대해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혹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잘 편승한 덕이라고 평가하며, 또 다른 이들은 공격적이며 잘 포장된 마케팅 덕분으로 읽기도 한다. 또는 장대한 시나리오, 화려한 시네마틱 무비, 잘 짜인 게임 밸런스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자들에게 최선의 자유도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최상의 게임 완성도를 구현해 오고 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하나의 게임이 출시되기까지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또 종료하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게임의 완성도에 집중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게임을 쏟아내고 또 쉽게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이 보편화된 현재의 게임 시장에서, 다시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성공의 비결을 곱씹어 보게 된다.

 


글 : 최덕수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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